필경사 바틀비, 허먼 멜빌
녀석은 채소조차 일절 먹지 않고 생강빵 말고는 아무것도 먹지 않아. 그러자 내 마음은 오로지 생강빵만 먹고 사는 것이 인간 체질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하는 공상에 빠져들었다. 생강빵이 생강빵으로 불리는 까닭은 빵에 그 특이한 구성요소 중의 하나이자 최종적으로 맛을 내는 성분으로 생강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근데, 생강은 어떤 것이더라? 맵고 향긋한 것이지. 바틀비가 맵고 향긋한가? 전혀 그렇지 않아. 그렇다면 생강은 바틀비에게 어떤 영향도 끼치지 않았어. 아마 녀석도 생강이 어떤 영향도 끼치지 않기를 바랐을 거야.스페인 연극, 야스미나 레자
각자 자기 파트만 생각하지 맙시다. 연극에 대해, 필라르에 대해, 페르낭에 대해, 그들의 서투름에 대해, 서투른 몸짓으로 생기는 사랑에 대해 생각합시다.흰 개, 로맹 가리
짐승을 사랑한다는 건 꽤나 끔찍한 일이다. 개 안에서 인간을 본 사람은 인간 안에서 개를 보고 그를 사랑하지 않을 수가 없게 된다.
그리고 인간 혐오에, 절망에 결코 이르지 못한다. 결코 평화를 얻지 못한다.제5도살장, 커트 보니것
"자, 여기 우리도 그런 거죠, 필그림 씨. 이 순간이라는 호박에 갇혀 있는 겁니다. 여기에는 어떤 왜도 없습니다."개소리에 대하여, 해리 G. 프랭크퍼트
생산물은 언제나 너절하고 조야한가? '똥shit'이라는 말은 분명히 그렇다는 걸 암시한다. 대변은 설계되거나 수공예로 만드는 게 아니다. 그것은 그냥 싸거나 누는 것이다. 그것은 다소 엉겨 붙은 모양일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지만, 어떤 경우에도 공들여 만든것은 아니다. 따라서 세심하게 만든 개소리라는 개념에는 어느 정도의 내적 긴장이 있다.밤에, 프란츠 카프카
그런데 네가 깨어 있구나, 파수꾼이구나, 바로 옆에 있는 사람을 찾자고 곁의 섶나무더미에서 꺼낸 불타고 있는 장작을 휘두르는구나. 왜 너는 깨어 있는가? 한 사람은 깨어 있어야 한다고 한다. 한 사람은 있어야 한다.비트겐슈타인의 조카, 토마스 베른하르트
나는 빈의 커피하우스를 증오했지만, 바로 내가 그곳을 증오하기 때문에 빈에만 있으면 커피하우스 가기라는 병에 걸려 버리고 말았다. 나는 커피하우스 가기 병을 다른 병보다도 더욱 지독하게 앓았다. 그리고 솔직히 고백하면, 오늘날까지도 나는 커피하우스 가기 병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커피하우스 가기 병은 내가 가진 모든 병 중에서 가장 불치의 것이기 때문이다.쓰레기, 브라이언 딜
쓰레기라 호명되는 것은 우리가 이제껏 건설해 온 사물 세계, 화려한 동시에 완전히 엉망진창이 된 세계에 대한 두 가지 마음 상태와 두 가지 감정 구조 사이의 중간 지대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들 쓰레기는 욕망과 폐기라는 양극단 사이에서 부유한다. 쓰레기를 단순한 오물이나 유해 요소 이상으로 고찰하는 더욱 좋은 방법은 우리가 원하지 않는 대상들과 정서적 관계에 쓰레기라는 불만족스럽고 일시적인 이름을 붙였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쓰레기는 소비된, 변경된 혹은 유예된 욕망의 표현이고 따라서 원형 사물ur-object이다.
바틀비와 바틀비들, 엔리께 빌라-마따스
여러 해가 지난 뒤 베케트는 말할 것이다. 단어들까지도 우리를 버리고, 그렇게 되면 모든 것은 이미 말해진 상태가 된다고.
호밀빵 햄 샌드위치, 찰스 부코스키
물이 깊을수록 소리가 없죠.
목욕탕, 다와다 요코
누구에게 무엇을 이야기한다는 것은 거의 언제나 위험한 것입니다. (...) 그렇지만 누군가가 침묵을 하면 어떤 이유이든지 간에 끔찍한 일들만 눈에 들어오지요.
대기 불안정과 그 밖의 슬픈 기상현상들, 리브카 갈첸
지금 당신은 누구 역할을 하고 있느냐 하면, 내 생명을 구해준 것이나 다름없고 내가 진짜 존재한다는 기분을 느끼게 해 주는 여자의 역할을 하고 있다고. 형이상학적인 시들, 모든 종류의 시들이 소재로 삼는, 자신이 지금껏 누구를, 어떻게 사랑해야 하는지 모른 채 살아왔음을 처음으로 깨닫게 해 주는 그런 사랑을 말하는 거야. 나는 레마를 그렇게 사랑했어. 당신은 날 속일 수 없어. 아주 가깝다는 건 결코 충분히 가까운 게 아니란 걸 당신은 이해하지 못하는 듯해. 그건 아무것도 아니야. 아무것도.
프루스트, 사뮈엘 베케트
분명 프루스트는 그의 인물들을 설명하는 것 말고는 하는 게 없지만, 그의 설명은 증명적이지 않고 실험적이다. 그가 자신의 인물들을 설명하는 이유는, 그들이 '설명할 수 없는' 존재임을 그대로 드러내기 위해서이다. 프루스트는 그들을 설명하면서 더욱 멀어지게 할 뿐이다.
타너가의 남매들, 로베르트 발저
저는 오로지 귀 기울이는 자이자 기다리는 자일뿐입니다. 그런 자로서, 하지만 완성되어 있어요. 왜냐하면 저는 기다리는 동안 꿈꾸는 걸 익혔거든요.
그로칼랭, 로맹 가리
"어쩔......"
"어쩔 수가 없어요. 없다고요, 사장님. 진심입니다. 물론 아주 꽉 잡으면, 잘 붙들면...... 하지만 문은 더 쉽게 열려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 말이 맞아...... 기운 내게. 그런 일도 일어나는 거야. 자네는 아주 평가가 좋아. 발을 내딛으면 자동으로 열리는 전자 장치도 있지"
"발을 내딛는다, 확실히 쉽군요."
"그런 것을 설치해야 할 것 같군."
"하기야 여기는 우리 집이 아니지요. 사장님 죄송합니다. 프로그래밍이 되어 있지 않아서요."
플로베르의 앵무새, 줄리언 반스
그리고 틀림없이 슬픔을 이겨 낼 것이다. 1년이나 5년 뒤에. 그러나 기차가 굴속을 빠져나와 태양이 빛나는 초원 지대를 지나 빠르게 덜컹거리며 영국 해협으로 내려가듯 그렇게 당신이 슬픔에서 빠져나오는 것은 아니다. 갈매기가 기름투성이 물에서 빠져나오듯 당신은 슬픔에서 빠져나온다. 당신에게는 일생 동안 온몸에 타르를 칠하고 새털을 붙여 달고 돌아다니는 것과 같은 아픔이 남는다.
테이블, 프랑시스 퐁주
글은 (위에서 아래로) 벽을 부정하고, 취소하고, 지우고, 파괴시켜서, 벽이 열리도록 (열린 문으로) 바꾸기 위해 씌어진다는 것을 추론해낼 수 있을 것 같다. 내리닫이 창과도 반대로.
(글은 벽을 창으로 변화시키는지도 모른다. 베네치아 블라인드, 미늘 덧문, 발과 같은 창으로.)
노인 울라에서, 배수아
기차에서 내린 단 한명의 승객은 나였다. 그러므로 이것은 그 누구의 꿈도 아니다.
카프카 ; 소수적인 문학을 위하여, G. 들뢰즈 & F. 가타리
1921년의 <일기>에는 이렇게 쓰여 있다. "은유는 나로 하여금 문학에 대해 절망하게 만드는 것 중의 하나다." 카프카는 모든 지시는 물론 모든 은유, 모든 상징주의, 모든 의미화를 필사적으로 제거한다. 변신이란 은유와 반대되는 것이다. 거기에는 본래적 의미도 형상적 의미도 없으며, 다만 단어들의 부채살 안에서 상태들의 분포가 있을 뿐이다.
창백한 말, 보리스 싸빈꼬프
"자네 꼭 교구 목사 같군."
"그럼 목사라고 해. 어쨌든 자네 말해 보게. 사랑 없이 살 수 있나?"
"물론 있지."
"어떻게 산단 말인가? 어떻게?"
"세상에 침을 뱉어야지."
"농담이지, 조지."
"아니, 농담 아닐세."
"불쌍하군, 조지. 자네 정말 불쌍해......"
나는 그와 헤어진다. 다시 나는 바냐의 말을 잊어버린다. 형사 실프와 평행 우주의 인생들, 율리 체
당신은 개연성이 없습니다. 저는 개연성이 없습니다. 우리는 10의 59승 중 1의 개연성을 지닌 우연입니다. 0이 59개가 달린 1이란 말입니다. 실프! 그렇게나 여러 번 당신이 주사위를 던져야만 한다는 말입니다. 그러다 적어도 한 번은 당신의 현존이 나오게 하려면요.
마운트 아날로그, 르네 도말
미끄러지기 쉬운 사면에 오래 서있어서는 안 된다.
공중전과 문학, W.G. 제발트
...이런 끔찍한 이미지들은 인간이 견디는 고통에 대해서 보통은 한번 걸러지고 정형화된 형태를 따르게 마련인 기존의 경험담 형식을 깨부수기 때문에 우리를 특히 경악에 휩싸이게 한다. 그리고 그 대목을 읽으면서 우리는, 동물원은 과거 군주와 황제가 자신의 힘을 과시하려는 욕망에서 유럽 전역에 세운 것이었다는 사실과, 그것은 또한 에덴 동산을 본뜬 일종의 낙원이었다는 사실을 문득 떠올리면서 다시 한번 공포에 사로잡히게 되는 것이다.
대성당, 레이먼드 카버
하지만 나는 눈을 감고 있었다. 조금만 더 그렇게 눈은 감은 채로 있자고 나는 생각했다. 마땅히 그래야 한다고 나는 생각했다.
"어때?" 그가 물었다. "보고 있나?"
나는 여전히 눈을 감고 있었다. 나는 우리집 안에 있었다. 그건 분명했다. 하지만 내가 어디 안에 있다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았다.
"이거 진짜 대단하군요." 나는 말했다.
고도를 기다리며, 사뮈엘 베케트
블라디미르 : 그럼 갈까?
에스트라공 : 가자.
둘은 그러나 움직이지 않는다.
충분히, 사뮈엘 베케트
우리는 꽃으로 연명했다. 그것이 균형을 유지한 방법이다.
주기율표, 프리모 레비
이 언어의 뿌리에 굴욕적인 측면이 있음은 자명하다. 예컨대, '태양', '인간', '낮', '도시' 같은 단어들이 없다. 쓸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반면에 '밤', '숨다', '돈', '감옥', '꿈'(하지만 이 단어는 주로 '바할롬', 곧 '꿈속에서'라는 표현으로만 쓰인다), '훔치다', '목매달다'와 같은 단어들은 있다.
실종자, 프란츠 카프카
"(...) 조직이 위험에 처해 있습니다. 저런 보이는 조직 전체를 타락시킵니다. 엘리베이터 보이들에게는 특히 대단히 엄격하셔야 합니다."
빠리의 아가씨에게 보내는 편지, 훌리오 꼬르따사르
습관이란 리듬이 구체화된 형식입니다. 리듬이 우리 삶을 도와주고 받는 요금입니다. 토끼를 토하는 것도 일정한 주기가 있고 방식이 있다는 것을 알고 나면 그렇게 섬뜩한 일은 아닙니다. 당신은 내가 클로버니 몰리나 부인이니, 왜 그런 고생을 하는지 모르겠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차라리 그 자리에서 토끼를 죽여서...... 아, 당신이 단 한마리의 토끼라도 토해보고 두 손가락으로 꺼내서 손바닥에 올려놔보면 그런 이야기는 못할 것입니다. 당신이 한 일이고, 또 이내 사라진다고는 하더라도 형언할 수 없는 애틋함을 느끼기 때문입니다. 한달은 아주 긴 시간입니다. 한달이면 몸집, 털 길이, 뛰는 높이, 야생적인 눈 등 많이 달라집니다. 한달이면 어엿한 토끼가 됩니다. 정말로 토끼다워집니다. 그러나 처음에는 따뜻하고 부스스한 털이 양도할 수 없는 현존을 뒤덮고 있으며...... 처음 얼마간은 시 같습니다. 이두메 밤의 산물 같습니다. 즉, 처음에는 그게 그것 같은데, 나중에는 편지지 크기의 하얗고 평평한 세계에서 아주 상이하고, 독자적인 작품이 되듯이 말입니다.
추적자, 훌리오 꼬르따사르
그러나 바로 그 순간에, 조니가 흥에 취한 것 같던 바로 그 순간에 갑자기 연주를 멈추고 옆 사람을 주먹으로 툭 치면서 이렇게 말했다. "이 곡은 내가 내일 연주하고 있는 곡이야." 단원들은 연주를 중단했다. 단지 두세명만이 제동이 늦은 열차처럼 몇소절 더 연주했을 뿐이다. 조니는 이마를 치면서 같은 말을 반복했다. "이 곡은 내가 이미 내일 연주한 곡이야. 마일스, 무서워. 이 곡은 이미 내일 연주했어."
정복하지 않은 사람들, 어슐러 K. 르귄
베르타는 그것들을 북쪽으로 가져올 수 없었다. 물을 조각한 벌이었다.
죄와 벌, 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
(...) 그가 몹시 잘 아는 것 같은 어떤 사람이 있는 것도 알아챘는데, 정확히 누구인지 아무리 해도 알아맞힐 수 없자 너무 애가 타 눈물까지 흘렀다. 어떨 때는 이렇게 누워 있은 지 벌써 한 달은 된 것 같고 또 어쩔 때는 같은 날 하루만 쭉 계속 되는 것도 같았다. 하지만 그것⏤그것에 대해서라면 까맣게 잊고 있었다. 대신, 잊지 말아야 하는 어떤 것을 잊었다는 사실이 시시각각 기억났고, 그렇게 기억이 날 때마다 고뇌하고 괴로워하고 신음하며 광란 상태가 되거나 끔찍하고 참을 수 없는 두려움에 휩싸였다.